늦가을 들녘에 서서
늦은 오후에 들길을 나섰다
나락 거둔 빈논에는
한때의 산오리들이
떨어진 나락으로 만찬을 즐기고
호수엔 또- 다른 오리 가족들이 모여 앉아
웅성 거린다.
여름새는 봄에 와서 뭍으로 들고
겨울새는 가을에 날아와 물에 드는데
벌써 호수가 시끄러우니
겨울이 이미 가까이 있음 이리라.
언제부터 인가
이렇게 가을 들녁에 서면
슬퍼할 일 없어도 절로 슬퍼 지는데
내- 나이 이미 늦가을 어디쯤에
걸쳐 있기 때문이리라.
길 옆의 도랑에는
누군가에 밟히어 몸뚱이 마져 찢겨진
가련한 낙엽의 시체가
아무렇게나 자빠져 있고
마른 갈대가 그 옆에서
죽어가는 가을의 숨소리 인양
가냘프게 운다.
엊그제 까지 우리는
저들의 아름다움을 격찬하며
격조 높은 목소리로 노래하지 않았던가?
이제 볼품없이 시듬에
저렇게도 쉽게 버려지고 잊혀 지다니
마음 한 구석이 저미어 온다.
저무는 가을 들녘에 서서
슬픔없는 별나라 하나 그려봄은
여기 이 별이 내겐
설움 많은 별이기 때문 이리라.